법과 조직의 경계, 권력의 책임은 누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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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라는 틀 안에서 개인과 조직의 책임을 가르는 일은 늘 복잡하다. 특히 대기업이나 국가 기관처럼 거대한 조직이 연루된 사건에서는 더욱 그렇다. 얼마 전 공정거래위원회와 쿠팡 간의 법정 공방이 본격화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핵심은 쿠팡의 경영 실질을 누가 갖고 있느냐는 점이다. 공정위는 창업주인 김범석 의장이 실질적 총수라고 보는 반면, 쿠팡 측은 법인이 의사 결정을 한다고 주장한다. 매일경제의 보도에 따르면 이번 재판은 단순한 과징금 다툼을 넘어 기업 지배 구조의 기준을 가를 중요한 선례가 될 전망이다.

법과 조직의 경계, 권력의 책임은 누구에게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것은 몇 년 전 삼성물산 합병과 관련된 재판이다. 당시에도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실질적 지배자’ 여부가 쟁점이 되었다. 법원은 개인의 의사 결정이 조직을 움직였는지, 아니면 조직의 절차적 판단이었는지를 면밀히 검토했다. 결국 이 부회장은 일부 혐의에 대해 유죄를 선고받았지만, 항소심에서 일부 무죄로 뒤집히며 책임 소재의 모호함을 드러냈다. 쿠팡 사건도 이와 유사한 지점이 있다. 김 의장이 창업자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공식적인 의사 결정 구조는 이사회와 경영진이 주도한다고 한다. 이 틈새에서 법적 책임이 어떻게 규명될지 주목된다.

이 사건을 보면서 문득 개인과 조직의 경계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흔히 기업이나 관청을 하나의 인격체처럼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이 결정을 내린다. 하지만 법적 책임은 조직이 질 때가 많고, 개인은 ‘조직의 일부’라는 이유로 모호해지곤 한다. 마치 계엄 상황에서 합참 법무실장이 김명수 전 의장에게 ‘계엄사 협조를 거부하라’고 조언했다는 한겨레 단독 보도처럼, 조직 내부에서도 법적 판단과 현실적 압박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이 드러난다. 이런 경우 법적 책임이 개인에게까지 미칠지, 아니면 조직의 판단으로 덮일지가 논란이 된다.

개인적으로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작은 스타트업에서 일할 때, 대표가 개인적인 판단으로 계약을 체결했는데 나중에 법적 문제가 불거졌다. 당시 변호사는 ‘회사 명의로 된 계약이므로 대표 개인보다 회사가 책임을 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대표가 전 재산을 털어 손해를 배상해야 했다. 조직과 개인의 경계가 이렇게 모호할 때, 법적 조언도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대기업이라면 회사가 손실을 흡수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이나 개인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법의 잣대가 조직의 규모와 관계없이 일관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법이 개인과 조직 사이의 책임을 명확히 하지 못할 때, 일반 시민은 혼란을 겪는다. 예를 들어, 음주운전 사고를 낸 운전자가 회사 업무 중이었다면 회사도 책임이 있는가? 이런 경우 개인 변호사와 법인 변호사의 접근이 다를 수 있다. 개인 차원의 법적 대응이 필요하다면 음주운전전문변호사와 같은 전문가의 조력을 받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조직의 책임을 묻는 것은 더 복잡한 법리 검토가 필요하다.

실제로 음주운전 사건에서 회사의 사용자 책임이 인정된 사례를 보면, 법원은 ‘업무 관련성’과 ‘회사의 관리 소홀’을 주요 판단 기준으로 삼는다. 예를 들어, 회사가 운전자에게 술자리 참석을 강요하거나, 음주 상태를 알면서도 운전을 묵인한 경우에 회사 책임이 인정된다. 반면, 운전자가 개인적인 사유로 음주운전을 했다면 회사는 책임을 면한다. 이처럼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법적 판단이 달라지므로, 사건 발생 시점의 증거와 정황이 매우 중요하다. 개인과 조직의 책임을 가르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을 때, 전문 변호사의 조력은 더욱 절실해진다.

또 다른 사례로, 서해 피격 사건에서 서훈 전 안보실장과 김홍희 전 해경청장이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월북 판단에 합리성이 있었다’며 개인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한겨레의 분석에 따르면 이는 국가 기관의 조직적 판단 오류를 개인에게 전가할 수 없다는 취지다. 이런 판결은 조직의 의사 결정 과정이 투명하지 않으면 책임 소재가 흐려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사건을 접하면서 문득 세월호 참사 당시의 책임 추궁 과정이 떠올랐다. 당시 해경과 선사, 정부 기관의 유기적 책임이 문제되었지만, 결국 몇몇 개인이 형사 처벌을 받는 데 그쳤다. 조직 전체의 시스템적 문제는 개선되지 않은 채, 개인만이 희생양이 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반대로, 어떤 사건에서는 조직의 잘못이 개인에게 전가되어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기도 한다. 이처럼 법원의 판단이 일관되지 않을 때, 사회적 신뢰는 흔들린다.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조직 내부의 의사 결정 기록과 증언이 체계적으로 보존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는다.

이처럼 조직과 개인의 책임 문제는 법원의 판단이 갈릴 때마다 사회적 논란을 낳는다. 중요한 것은 조직이 아무리 커도 결국 사람이 만든 시스템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법은 조직의 면죄부가 아니라, 개인의 권리와 책임을 보호하는 도구로 기능해야 한다. 재판소원 제도가 도입된 지 100일이 다가오면서 ‘1호 인용’ 사례가 나올지 주목되는 이유도, 개인이 헌법 재판을 통해 권리를 구제받을 수 있는 문이 넓어졌기 때문이다.

재판소원 제도는 개인이 법원의 판결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한 제도인데, 이는 개인의 권리 구제 수단을 확장한 의미 있는 변화다. 실제로 도입 이후 여러 사건에서 재판소원이 신청되었지만, 아직 인용 사례는 나오지 않았다. 법조계에서는 헌법재판소가 신중한 입장을 취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하지만 이 제도가 자리 잡으면, 개인이 조직의 잘못된 판단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또 다른 창구가 생기는 셈이다. 이는 법이 개인과 조직의 경계를 보다 공정하게 조정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법은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아서, 사회 변화에 따라 개인과 조직의 경계를 다시 그어야 한다. 거대한 조직에 가려진 개인의 책임을 어떻게 끌어낼 것인가, 반대로 조직의 판단을 개인에게 전가하지 않을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는 과정이 바로 법의 진화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이러한 법의 진화는 단순히 법원의 판결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입법부와 행정부, 그리고 시민 사회의 지속적인 관심과 논의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최근 개정된 상법에서는 주주의 권리를 강화하고 이사회의 책임을 명확히 하는 방향으로 변화가 있었다. 이는 조직의 의사 결정 과정에 대한 투명성을 높이고, 개인의 책임을 보다 분명히 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또한, 시민 사회에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조직이 단순히 이윤 추구를 넘어 법적, 윤리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가 법의 진화를 이끄는 동력이 된다.

앞으로도 우리는 조직과 개인의 책임 문제를 둘러싼 다양한 사건들을 접하게 될 것이다. 그때마다 중요한 것은 법이 단순한 규칙의 집합이 아니라, 정의와 공정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라는 점을 잊지 않는 것이다. 개인의 권리가 조직의 논리에 의해 무시되지 않도록, 그리고 조직의 판단이 개인에게 부당하게 전가되지 않도록, 법은 끊임없이 진화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우리 모두가 더 공정한 사회를 향해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