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녀가 함께 쓴 복수의 자서전, 그 의미
가끔은 책 한 권이 세상에 던지는 질문이 무겁게 다가올 때가 있다. 최근에 접한 한 기사가 그랬다. 한겨레에서 다룬 ‘정상가족’ 바깥에서 모녀가 함께 쓴 복수의 자서전 이야기였다.

그 기사는 ‘정상가족’이라는 틀에서 벗어난 모녀가 각자의 시선으로 써내려간 자서전을 소개했다. 딸은 아버지의 학대와 가정폭력을, 어머니는 자신이 겪은 결혼생활의 민낯을 담담하게 고백했다. 이 책들은 단순한 체험담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은폐된 폭력과 침묵에 대한 기록이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문득 우리 사회에서 ‘가족’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덮어 왔는지 생각했다. 흔히 ‘정상가족’이라 부르는 틀은 부모와 자녀가 함께 사는 핵가족을 이상적인 모델로 삼는다. 하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존재하며, 그 안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상처와 비밀을 안고 살아간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 따르면, 가정폭력 피해자 중 상당수가 ‘가족이니까 참아야 한다’는 인식에 눌려 신고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실제로 2023년 통계청 조사에서 가정폭력 피해자의 60% 이상이 주변에 알리지 않은 채 침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현실 속에서 모녀의 자서전은 단지 개인의 기록을 넘어, 침묵을 깨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이번 책들은 특히 모녀가 함께 목소리를 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딸은 아버지의 폭력에 맞서기 위해 법적 싸움을 벌였고, 어머니는 그 과정에서 딸을 지지하며 자신의 과거를 마주했다. 두 사람의 서로 다른 기억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독자는 가족이라는 관계의 복잡성을 새삼 느끼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두 사람의 기억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딸은 아버지의 폭력적인 행동을 또렷이 기억하지만, 어머니는 그 시절을 ‘힘들었지만 그럭저럭 견딜 만했다’고 회상한다. 이처럼 기억의 온도 차이는 가족 내 폭력이 얼마나 은밀하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폭력은 한쪽에게는 생생한 상처로 남지만, 다른 쪽에게는 일상의 일부로 체화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이런 자서전이 단순한 고백 이상의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가족 내 폭력은 오랫동안 가정사로 치부되며 사회적 논의에서 배제되어 왔다. 그러나 이렇게 개인의 목소리가 공개되면 사회적 인식이 바뀌고, 정책적 변화도 이끌어 낼 수 있다. 실제로 이러한 사례들은 관련 법률 개정이나 지원 체계 마련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2021년 ‘가정폭력처벌특례법’ 개정은 피해자 보호 명령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는데, 이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공개적 증언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최근 몇 년 사이 가정폭력 피해자 지원 예산이 대폭 확대된 것도 이러한 목소리들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주의할 점도 있다. 개인의 고백이 때로는 재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가족 내 문제를 공론화할 때는 당사자의 동의와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번 책에서도 모녀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정리했으며, 법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과정이 없었다면 그들의 용기가 또 다른 상처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공개한 후 오히려 가해자로부터 위협을 받거나, 주변의 시선으로 인해 더 큰 고통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다. 따라서 공개적 고백은 신중하게 준비되어야 하며, 반드시 안전망이 마련된 상태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번 모녀의 사례는 그 과정을 제대로 밟은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만약 비슷한 상황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전문가의 조력을 받는 것이 좋다. 가족 문제는 감정이 얽혀 있어 혼자서 해결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법률적 자문이 필요하다면 이혼양육권 같은 곳을 참고하면 도움이 된다.
또한, 상담과 심리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관으로는 한국가정법률상담소나 여성긴급전화 1366 등이 있다. 이런 기관들은 피해자들이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전문가의 도움을 통해 체계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이 책들은 가족이라는 개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는 어쩌면 ‘정상’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것을 강요해 왔는지도 모른다. 한겨레 기사에서도 지적했듯이, 이번 자서전은 가족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적 논의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가족의 형태는 시대에 따라 변화해 왔다. 과거에는 대가족이 일반적이었지만, 산업화 이후 핵가족이 표준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1인 가구, 한부모 가족, 재혼 가족, 다문화 가족 등 다양한 형태가 공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상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특정 형태만을 이상적으로 여기는 경향이 여전히 존재한다.
이번 자서전은 바로 그 ‘정상’이라는 프레임에 균열을 낸다. 가족이 반드시 혈연으로 맺어져야 하는지, 폭력이 있는 가정도 ‘가족’으로 인정될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물론 이에 대한 답은 쉽지 않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가 가족을 바라보는 시선을 넓히는 것은,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더 깊이 듣는 일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결국, 우리가 가족을 바라보는 시선을 넓힌다는 것은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더 깊이 듣는 일이다. 그 목소리들이 모여 더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